>요가(YOGA)의 역사
요가의 어원은 '유즈(yuj)로, "결합"을 뜻하며 삼매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말을 마차에 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가는 서로 다른 성질, 상이한 존재들의 결합을 통해완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완성의 길, 깨달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영국의 고고학자 존 마셜경에 의해 1923년 인더스 강 하류에 있는 고대 성곽도시인 모헨조다로가 발굴되었다. 그곳에는 시바(전설상의 요가 창시자)상과 요가 수행자의 상이 있고, 요가 체위가 새겨진 동석제 인장이 발견되면서 요가 BC3,000년경 인더스 문명과 같이 한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의 순도가 불교를 전하면서 요가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는 요가의 개인적, 사회적 규율과 흡사하며, 퇴계 선생의 양생법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수련 과정으로 제시된 '치심'도 요가와 비슷한 수련 과정이다.
요가(YOGA)는 원래 산스트리트어이다. '우파니샤드(스승 가까이에 다가앉는다.)라는 고대 인도의 철학적 문헌에서는 요가를 몸과 마음을 다스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수행법이라고 했다. 요가의 시작은 2000~3000년경으로 추측되는데, 이때의 요가는 음식, 수면, 욕망을 억제하고 호흡을 조정하여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고행적인 행법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경부터는 고행과 구별되는 요가 고유의 행법과 철학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기원전 200년경에는 명상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색, 윤리적 실천, 종교적 헌신 등의 모두 요가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듯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요가가 다른 사상과 구별되는 철학을 갖게 된 것은 기원 후 4~5세기경 요가 경전인 '요가수트라'가 성립되면서부터이다. 13~17세기에는 육체적, 생리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하타요가가 크게 발달하였고, 이러한 발달과정 속에서도 이론이나 실천행법을 달리하는 여러 유파의 요가가 발달하게 되었다. 오늘날 요가는 각 문화에 따라 수련자의 대상과 그 환경에 따라 상황에 맞게 수련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요가란 무엇인가?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른 삶의 태도, 숙고과 실천, 신체를 바르게 움직이면서 자각하는 기법과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요가를 익히고 깨쳐서 신설하게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요가는 자아를 변화시키는 기법이자 과정이다. 자아 발전을 위한 모든 과정이 요가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요가는 화합 아래서 통합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력,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해력과 지력등의 영적 탐구와 깨달음의 원동력이다. 이를 통해 신앙신으로서의 지침들 혹은 현자들의 도덕과 규범을 성실하게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 모두가 자아완성으로의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상생활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 데 에너지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요가수행자라 할 수 있다.
BC 6세기 바샤가 쓴 [마하바라타]에는 힌두교의 경전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바가바드기타]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인간성을 상징하는 장수 아르쥬나가 크리쉬나로부터 요가를 배우는 과정이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판다바 족과 카우라바 족의 군대가 서로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많은 친구과 친척들이 적진에 정렬해 있는 것을 보고 아르쥬나는 주저한다. 그는 정의롭지만 진인한 전쟁에 참가하느니보다 적군에 항복하여 죽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아르쥬나는 크리슈의 설법에 의해 갈등을 극복하고 전사로서의 의무감을 회복하게 된다. 크리슈나는 사적인 승리나 전리품 획득과 같은 이기심을 버리고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여 자신의 의무를 냉정히 수행하는 것이 더 위대한 길이라고 그에게 알려준다.
크리슈나가 아르쥬나에게 싸우라고 했던 것은 전쟁을 독려했다기보다 슬픔과 미혹의 원인을 제거하란 뜻이었다. 또한 삶의 자유는 냉철하고 바른 지식을 통해 지혜의 힘으로 오직 순수한 본질만을 추구하여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얻어진다고 설명하였다. 크리슈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메세지는 과거의 기억이나 후회 속에 머물거나, 매리의 일을 걱정하기보다 지혜와 통찰로 바른 행동과 현재의 주어진 본인의 의무를 차곡차곡 실천해나가면 삶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활동을 영리추구가 아닌 진리를 얻기 위한 도구의 장으로 여겨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를 할 때 비로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에 묘사된 전쟁터는 인간 내면의 갈등이 집약된 장소이다. 이곳을 종횡한다는 것은 사지가 주저앉고, 입이 바싹 타며, 전율이 몸을 횝싸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고뇌와 자기 극기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아르쥬나는 말한다. 크리슈나와 아르쥬나의 대화가 깊어지듯, 내면의 신과 인간의 교감이 깊어질수록 전쟁터와 같은 우리의 내면은 이제 고요한 명상의 공간이 된다. [바가바드기타]에서의 신은 신성의 존재를 의미하며, 그러한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여기서의 신은 종교 안에서의 신이거나, 혹은 완성된 자아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신에게 다가가려는 본능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 내면에는 전체로서의 신과 하나가 되려는 강한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내면의 성찰과 자기개발, 온전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끊임 없이 영적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춤, 그림, 글쓰기는 영혼의 언어들이며 기도와 명상은 영성을 추구하는 열망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성한 에너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샘솟게 된다. 명상체험을 하게 되면 내면의 큰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그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들면서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별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사랑이 된다. 연인들의 관계처럼 대상이 있는 사랑은 기대와 욕망이 앞서게 되는, 에너지의 고갈을 느끼는 사랑일 것이다. 주고받지 않으면 쉽게 고갈되는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명상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음 이상의 사랑, 내 존재가 향기로운 사랑이다.
육체적인 수련, 정신적인 수련이 힘들때 보는 요가 글귀 요가명언
'요가 > 요가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가 아쉬탕가 마이솔 클래스는 어떤 수업인가요? (0) | 2020.01.18 |
---|---|
요가 나마스떼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0) | 2020.01.17 |
요가 수련, 요가 강의를 할 때 필요한 자세에 대해서 알아보자. (0) | 2020.01.14 |
요가 수련 시 지켜야 할 5가지 수칙 (1) | 2020.01.13 |
핫요가 비크람 요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3) | 2020.01.11 |
댓글1